본문 바로가기
물생활 살기

물생활 만 1년, 물로그 만 1일

by dumbung_arium 2023. 4. 14.

물생활 블로그를 시작하면서 올리는 명세서 겸 회고담으로 첫인사를 대신하고자 합니다. 둠벙이라고 합니다. 꾸벅.

 

그동안 물생활 소셜 미디어로는 인스타그램만 써오다가 블로그도 해야겠다 싶어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아무래도 길고 자세한 정보는 블로그가 어울리더라구요. 유튜브 채널도 개설은 해뒀지만 어디까지나 동영상 저장용 보조기능으로 여기시면 되겠습니다. 직접 등장해서 떠드는 일 없을 거예요.

 

지금 저희 집 5개의 수조(+물벼룩 및 녹조 배양통)에는 10종 25마리의 열대어, 거북이 x1, 가재 x1, 뱀파이어 크랩 x2,  새우, 뾰달이, 물벼룩과 23종의 식물이 살고 있습니다. 좋게 말해 집중력이 높은 성격인지라 짧은 기간에 어쩌면 지나치게 많은 종을 섭렵하려 들었는지도요.

 

모든 것은 만 1년 전 오늘, 아이가 학교 방과후 시간에 물고기 한 마리를 데려온 것에서 시작되었습니다. 파란색 베일테일 베타 수컷이었습니다. 하늘하늘한 그 지느러미가 아름다워 '하늘이'로 이름 지어준 녀석은 딱 손바닥만한 채집통 안에서 잔뜩 웅크리고 있었습니다.

 

1년 전, 베일테일 베타 '하늘이'와의 첫만남

 

나눠주신 선생님 말씀이 좀 아쉽죠. 채집통에서 그냥 키워도 되고, 하루 한 번 깨끗한 물로 갈아주고 먹이 좀 주면 된다고... 찐뉴비가 들어도 그럴 리는 없잖아요. 이 작은 데서 어떻게 물고기가 살아요. 이른 저녁 마트 애완동물 코너로 달려갔습니다. 동네 수족관들은 저녁 8시까지도 흔히 문을 연다는 사실만 알았더라면 말이죠.(그러니까 여러분, 학교에서 동물 나눠주는 거 가급적 하지 말아야 되구요(곤충쯤은 열외). 마트 애완동물 코너도 가급적 거르시는 게 좋아요.)

 

그때까지 제가 가진 물생활 지식과 경험이라곤 어렸을 때 외할아버지께서 운영하시던 열대어항에 대한 희미한 기억 정도가 전부였어요.(키싱 구라미와 엔젤 피쉬, 실지렁이 급이가 기억나요.) 초딩 때 금붕어 한두 마리나 주변의 짧은 실패담 정돈 넘어가자구요.

 

전조가 있긴 했습니다. 사정상 개, 고양이는 키울 수가 없고 저도 아이도 동물은 원해서 생각해낸 게 열대어였거든요. 근데 듣자 하니 이게 개미지옥이라네요. 알아야 될 게 무지 많고 손도 돈도 하염없이 들어간다는 거죠. 풍문을 우습게 여기지 말자. 그래서 망설이고만 있던 문을 하늘이가 벌컥 열어버린 거.

 

마트에 용품 사러 갔는데 들고 온 건 바가지였... 무려 75000원을 준 일체형 아크릴 어항은 딱 쓰레기통같은 모양새에 조명은 수초에 일도 도움 안되고, 무엇보다 싸구려 여과기가 내는 엄청난 소음에 질려 3주만에 창고행. 히터, 사이펀, 온도계, 박테리아제, 물갈이제 도찐개찐. 그제야 눈치를 채고 온라인으로 주문한 25큐브 어항 등등에서 하늘이는 여즉 잘 살고 있습니다. 중간에 리모델링을 단행하기도 했고 수산질병관리원 다녀온 적도 있지만요.

 

012
[수동 슬라이드] (1) 하늘이의 첫 집(마트제 일체형), (2) 얼마 후 이사한 25큐브, (3) 몇 달 후의 리모델링

 

위의 수동식 슬라이드쇼가 딱 지난 1년간 저의 변화입니다. 아무 것도 모르고 마트에서 준대로 집어넣기 -> 몇 가지 주워들은 걸로 엉성하게나마 꾸며보기 -> 절치부심하야 아쿠아스케이퍼 흉내도 내가며 차츰 익숙해지기.

 

예상대로 같은 날 받아온 다른 아이들의 베타는 얼마 못가 하나씩 죽어갔다고 해요. 누굴 비난하려는 건 아닙니다. 아이들이 베타를 직접 키운다는 건 말도 안되는 얘기고(얘네 절대로 쉬운 물고기 아니에요), 부모님들도 성향과 여건상 어려움이 있으셨을 테고, 마트도 운영이란 걸 하려면 어쩔 수 없겠죠. 다만 제가 물생활에 맞았을 뿐이라고 생각합니다.(그러니까 여러분, 맞는 거 되게 중요해요. 댕냥이와 '더불어살기'보단 정원이나 온실의 '관리'에 가깝더라구요.)

 

1년간 재미나게도 달려왔습니다. 하루에 몇 시간씩 검색하고 책 읽고 정리해가며 공부하고, 눈치를 주건말건 어항 앞에 딱 붙어앉아있고, 아쿠아스케이핑 해본다고 여차하면 공방 모드로 진입하고, 엑셀로 저장해놓은 용품 목록이 어언 200행을 넘기고 있네요. 그래서 요즘엔 이렇습니다.

 

012
[수동 슬라이드]  요즘 둠벙네 식구들. (1) 수초항+베타항+가재항, (2) 거북항+가재항 V2(준비중), (3) 인복이와 새우항

 

그동안 데려왔던 생물 목록을 수조별로 정리해봅니다. 백업용 나열에 가까우니까 적당히 넘겨주세요. {} 표시는 이미 사육이 종료된 애들이에요.

 

  • 수초항: 카디널 테트라 x10, 러미노즈 테트라 x7, 다리오 다리오 x2, 라스보라 갤럭시 x4, 오토싱클루스 x2, 블랙 안시스트러스 숏핀 x1, 체리 새우, 야마토 새우, 뾰족달팽이, {웨그테일 플래티 x4, 뽀뽄데타 레인보우 x5} | 쿠바펄, 미니헤어그라스 벨렘, 루드위지아 아틀란티스, 로탈라 인디카, 미리오필룸 마토그로센세, 미리오필룸 가이아나 드워프, 하이그로필라 핀니티피다, 콩나나, 부세, 미니 물배추, {알테란테라 레시드, 라지 펄그라스}
  • 베타항: 베일테일 베타 x1, 체리 새우, 뾰족달팽이 | 쿠바펄, 미니헤어그라스 벨렘, 피시덴 모스, 하이그로필라 핀니티피다, 로탈라 인디카, 미니 물배추, {암브리아}
  • 가재항: 블루 크로우 가재 x1, 제브라 다니오 x4, 체리 새우, 뾰족달팽이 | [수중] 붕어마름, 워터 코인, 하이그로필라 핀니티피다, 자바 모스, 아마존 프로그비트, {물미역 모스} | [반육상] 파리지옥
  • 거북항: 커먼 머스크 터틀 x1, 블루 테트라 x4, 제브라 다니오 x4, 뱀파이어 크랩 레드 데블 x1 & 퍼플 x1, 체리 새우, 야마토 새우 | [수중] 붕어마름, 하이그로필라 핀니티피다, 하이그로필라 실론, 자바 모스 | [육상] 아스파라거스, 제주애기모람, 싱고니움, 만강홍, 비단이끼
  • 사랑방: 인디언 복어 x1, 체리 새우, 뾰족달팽이 | 붕어마름, 하이그로필라 핀니티피다, 로탈라 인디카, 미니 물배추
  • 배양통들: 모이나 물벼룩, 뾰족달팽이, {브라인 쉬림프} | 클로렐라, 아마존 프로그비트

 

사육 종료는 말할 것도 없지만 숫자인들 그대로겠습니까. 궁합이 안 맞아 무분 드린 애들도 있고 초기적응 실패 및 원인불명으로 월 평균 한 마리, 게다가 자연의 섭리를 존중하는 제 방침상 거북이와 가재 뱃속으로 들어간 애들까지 많이도 보냈습니다. 이기적인 말일 수 있습니다만 그 덕분에 참 많은 것을 얻었어요. 작년 마지막날 인스타에 올렸던 글을 뒤적여봅니다.

 

"한 해동안 많은 일이 있었다. 아니, 없던 일이 벌어졌다. 무에서 유를 일궈내려다보니 강제이주 당한 건 사실 나. 관리며 공부며 하루 몇 시간씩을 매달렸고 지출도 달마다 십만 단위를 밑돌지 않았다.(까짓 거 해수항에 비하면^^)

이리하여 돌아가고 있는 다섯 개의 수조(+ 배양장 하나). 그래서, 행복하니? 까진 모르겠지만 심심하진 않다. 그리고 많은 걸 배웠다. 어려서부터 동식물을 좋아했고 뭐 키우는 게 낯설지 않았지만 물세계는 가히 또다른 렐름. 자연생태에 대한 이해도 조금은 더 깊어진 듯하다.

8개월 최고참 베타부터 아들녀석과 수십 년을 함께 할 거북이까지, 언제 물고기밥이 될지 몰라 매순간을 불태우는 물벼룩부터 만난 지 몇 시간만에 헤어져버린 뱀파이어 크랩까지, 모두들 내게 와주어서 고마웠다. 너희 덕에 뭔가 한 것 같은 한 해였단다."

 

여전히 그렇게 생각합니다. 이만큼 뭔가에 열중해본 건 5~6년만인 것 같네요. 짧게나마 단맛쓴맛 다 찍어보고서야 약간의 여유도 생기고 조금은 길게 떠들어볼 결심도 서는군요. 인생에 없는 게 세 가지라던데 하나 추가해야 맞을 것 같습니다. 지름길.

 

그래서 앞으로 올리는 내용들은 제가 직접 경험하거나 전문가 혹은 다수에 의해 확인된 것으로 최대한 국한할 생각입니다. 물생활에는 정답이 아니라 단답이 없는 거라고 봅니다. 생물이니까 당연하죠. 그러나 여러 개의 답이 공존할지언정 오답은 있습니다. 지금 이 시간에도 무분별하게 퍼날라지는 잘못된 정보로 많은 분들이 힘들어하고 계실 테죠.

 

이런 이유에서 좀 냉정하고 무미건조하게 굴려구요. 인스타의 평상시 모습과는 달리 발표 나와서 딱 굳어버린 주기자 버전 블로그라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자주는 못하고 간간이 하나씩, 철저히 정보 위주로 가겠습니다. 혹시라도 도움이 되신다면 제가 받은 수십 배의 작은 보답으로 알고 기뻐하겠습니다.

반응형

댓글